Monday, November 15, 2004

Capital Kebab House, The Cut, London

이전에 살던 집에서 워털루역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사진에 나와 있는 터키 음식점이 나온다. 이름하야 Capital Kebab House. 길가에서 보면 조그마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나름대로 넓직한 식당이 나오는데, 처음 간단히 한끼 해결하자고 수정이와 둘이 들어왔다 맛본 Kebab 맛이 꽤 괜찮았다. 알고 보니 밤에는 꽤나 붐비는, 그것도 단골 택시기사들이 야식을 즐기는 곳이었다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사진 오른편으로 여러명 앉아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택시기사들이 애용하는 식당은 음식이 맛있다라는 상식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엊그제 13일, 집에 가려 버스를 타려다 배가 고파 사먹고 가자고 수정이와 의기 투합, 한번 더 들렀다...


이 집에서 맛있는 음식은 Chicken Shish Kebab. 구운 닭가슴살, 피망, 양파, 잘게 썰은 오이 등을 쌀밥에 곁들여 내온 요리. 여기에 맥주 한병 곁들여 먹으면 저녁으로는 푸짐 이상이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 부담스러울지도...Kebab은 여기 돈으로 6.5파운드 정도니까, 한화로는 약 13000원.

Saturday, November 13, 2004

번역은 고역

급히 해달라고 해서 맡은 '알바' 번역을 한다고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잤다. 어느 통신업체 한글약관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는데, 답답한 점은:

- 울 나라 약관은 한글이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많다는 것;
- 법적인 문제를 고려, 그냥 직역을 해줘야 할 지, 아님 의역을 할지 헷갈리는 것;
- 무슨 무슨 법령이니 뭐니 하며 수도 없이 나오는 것 영문 제목 찾으려 시간 소비가 많다는 것;
- 주어/술어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몇 번씩 읽어야 한다는 것;
- 고객을 위한 약관이 아니라 고객이 읽다 지루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쓰여졌기에 번역도 지루하다는 것...

한 문장, 한 문장 '처분'해 나갈 때마다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짜증'을 다스려도 보고, 내치기도 하고, 그냥 분출시키기도 하다 겨우 겨우 마무리지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창작을 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한다.

3년 6개월을 보낸 자리...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운이 참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학교에 나만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공간의 협소함이 만성적인 문제인 이 학교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책상 하나씩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다른 도시의 학교들도 외국학생에 대해서는 사정이 비슷하다... 최소한 인문사회계통의 경우에는...). 그래서 겪게 되는 생활이 도서관 및 학과에서 마련해준 별도의 연구실을 전전하는 것인데, 후자의 경우 몇 안되는 자리를 여러 사람이 써야 되기에 자리 쟁탈전이 치열하다.

나 역시 처음 과정을 시작하며 도서관을 전전하던 중, 어느 날 지도교수가 학교 연구실에 자리 여유가 생겼는데 올 생각있냐고 하여 잠시 고민하다 가겠다고 했다. 도서관을 새로 단장하면서 지도교수 있던 연구실이 확장 이전을 하였는데 그 덕분에 여유 자리가 생겨 박사과정생을 몇 명 받게 되었던 것. 지도교수가 부소장이라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생활이 벌써 3년 6개월이다. 그 중 1년 넘게는 자료 조사한다고 돌아다니며 런던에 없었으니 정작 2년 반을 사진에 나오는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앉아 생활을 하였던 것...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시끄럽게 떠들때 짜증나는 점을 제외하고는 무척 감사하며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년에는 꼭 다른 사람에게 저 자리를 물려 주리라 생각하면서...

Tuesday, November 09, 2004

이라크

오늘 영국 뉴스에는 미군 지원하기 위해 이동 배치된 Black Watch 부대원 사망 소식들이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특히 어제인가 죽은 부대원 둘은 검문소를 덮친 자살폭탄에 의해 죽었다고 하며 부대의 안전이 크게 위협된다 어쩐다 얘기들을 하는데...

일단 죽은 부대원들이 불쌍한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씁쓸한 느낌...

담론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매체전달자의 시각이 고정되고,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편향된 정보에 그대로 노출되어 피해자로 일컫는 이들과 감정일치됨을 강요받는다.

뉴스 그 어디에도 자살폭탄을 가한 그 사람의 얘기는 들어있지 않다. 5분, 10분, 그 한정된 매체전달 시간에 자살폭탄을 감행한 그 어느 한 인간의 역사는 매장된다. 그와 함께 그 낯선 이의 우주는 사라진다. 그의 가족에게 남아 있고 (가족이 생존해 있다면), 동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겠지만, 우리가 아는, BBC, CNN 등을 통해 쓰여지는, 필경 후세들이 기억하고 배우게 될 그 역사의 현장에는 자살폭탄 '테러분자'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어느 한 구석 조선땅의 젊은이도 이렇게 쓰러져 갔을까?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전쟁'을 하는 이들 역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테러는 더욱 융성한다.

Wednesday, November 03, 2004

Life in Tirana and Albania

2003년 5월, conference라고 하는 곳에 처음 발표를 하러 갔는데 그곳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였다. 사실 알바니아라는, 내게는 미지의 땅이 conference 장소라는 것에 더 '혹'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유럽 발칸 반도 서부에 이탈리아를 마주 보고 위치한 알바니아는 복잡한 그 쪽 정세만큼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에 인접한 발칸 국가 중의 하나. 이 나라를 다녀오면서 동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답니다...


유럽 최빈국. 최근 9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 독재 및 폐쇄적인 국가 운영...변화의 물결은 90년대 후반부터라는데, 수도인 티라나에서 오래 체류한 사람에 따르면 예전과는 달리 안전한 느낌이 들며 정이 간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은 티라나 국제 공항 - 일국의 첫 인상을 주는 국제 공항은 나의 모든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도착후 비행기에서 공항 청사까지 가는 버스의 창문은 대부분 깨져 나가 없었으며 때마침 내린 빗발이 버스 안까지 몰아치기도 하였다. 지극히 가난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역설스럽게도 그 자체가 정감을 갖게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렇다' 라고 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는 그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도심부 버스정류장. 도시 거리를 점유하는 차량이 그 다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체증은 느낄 수 없다. 재밌는 인상 세 가지:

하나는, 무수히 많은 벤츠 자가용. 최빈국 이라고 하는 이 곳의 차량의 상당수가 벤츠이다. 그것도 최신 차종이 다수인... conference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느끼며 자문을 하던 것 역시 왜 이리 벤츠가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 - 멀리 보이는 간판의 LG 처럼 여기마저 기업은 진출해 있었다. 공항 가는 가도에서 보았던 공사중인 현대-기아 공장(?)처럼, 한국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상품은 이미 와 있었다.

세번째 - 동양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편한 느낌을 받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내 앞에서 '가라테' 동작을 보이며 지나가는데, 서유럽에서 느끼던 '놀림'이라기 보다는 '낯선 친근함'을 갖게 된다. 얼마전 'Karate Kid'가 유행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 단체 관광객은 여기에도 있었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수도 티라나 도심 가도를 살짝 벗어난 이곳. 시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부산한 사람들... '여기도 도시구나'


도심내 길거리 시장. 좁은 골목으로 끊임없이 다니는 통과 차량, 장보러 나온 사람들 (사진에 보이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길가 상점에 쌓여 있는 물건들... 자본주의 상품경제로 이행하고자 하는 이 나라의 현 지점이 어디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래는 티라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라는 곳에 올라 도심 전경을 잠시 느껴 보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사람들의 함성...무슨 소리인가 하고 잠시 의아해 했었는데, 축구장 관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진 오른쪽 상단을 주의깊게 보면 축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중들이 보인다. 사회주의 건물 특유의 양식이 느껴지는 건물이 사진 하단에 보인다. 정부 청사 건물이라 했던가...지금은 헷갈린다...


티라나 (알바니아 수도) 시장은 화가였다 한다. 신장 190센티미터 가까이 될 것 같은 육중한 몸의 이 남성 시장이 conference 개.폐회때 참석하여 연설도 하였는데 기억에 남는 말: "My English is as broken as the city of Tirana"

온 몸에서 풍기는 예술가 특유의 고집스러움과 여유 - 혼탁하고 부패한 알바니아 정치계에 진출하여 유서깊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사람이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역시 '부패' 사유로 조사당하는 상태라는데, 그 자신은 다른 어떤 이보다는 덜 부패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재정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도시에 변화를 가져오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자 하는 이 시장이 착수한 두 가지. 건물 전면에 지중해에 어울리는 파스텔톤의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에 나온 '강'가 단장 - 아무리 보아도 강이라 할 수 없는 이 '하천'을 여기 사람들과 지도는 고집스럽게 '강'이라고 지칭한다.


아래는 좀 전 사진에 나온 '강'의 보행자용 다리. 이 사진을 찍은 이유는 사실 이 다리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강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오른 쪽은 앞선 사진과 같은 깨끗함 그 자체를 유지하지만, 왼쪽부터는 온갖 쓰레기가 버려진 오염된 상태이다. 재정이 없어 조금씩 조금씩 강가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라 아직까지 이 다리 왼편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한 것이라 하는데...


시장에 따르면,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습관은 90년대 중후반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라 한다.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 자유로 인식되면서 쓰레기 버리는 것도 마음대로 한다는데... 하여튼, 재밌는 것은 새롭게 단장된 오른편 강가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한다. 사실 이 강가에는 불법 증축된 상가, 주거 건물이 점령하여 강이 보이지 않았다 한다. 그 많은 건물들을 어느 날 일제히 철거하여 강을 복원하였다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우리나라 서울의 모 시장이 생각이 났다...

경제가 낙후되면서 버려진 공장. 도심을 벗어나 1시간여 가다 보면 보이는 곳이다. 을씨년 스런 모습. 언제 다시 손길이 미칠지...


알바니아가 직면한 도시 문제 중의 하나가 수도 티라나 같은 도시 주변에 광범위하게 번지는 무허가 주거용 건물이라 한다. 사진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무허가 건물이라 하는데, 내가 생각하던 무허가 건물에 비하면 이들 건물은 훨씬 상태가 양호하다. 무허가로 지어졌기에 우후죽순 지어지면서 도로 개설, 수도전기 연결 등, 무허가 주택지역 특유의 문제가 여기서도 반복이 된다 한다. 대부분 농촌에서 이주한 이농민들이 짓는다 하는데, 먼저 어느 한 가족이 정착해서 기초를 닦고 일층을 지으면, 그 가족의 형제 가족이나 친척 가족이 오면서 그 위에 한 층을 더 짓고, 다시 한 층을 더 짓고 정원 꾸미고, 담 쌓고 하면서 완성이 된다 한다. 보이는 집 한 채 마다 몇 세대가 함께 사는 모양이다.


도시 곳곳에 쓰레기, 폐품이 방치되어 있던 것 역시 알바니아에 대한 인상중 하나였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얼핏 본 폐차. 길가에 코 박고 놓여 있던 차는 언제 수거될 지 모를 일이다.


이름을 잊은 어느 알바니아 소도시. 아직 개발이 안되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만큼 자연이 보호되고 오래된 도시의 정취가 간직되어 있는 알바니아. 버스타고 지나치던 자연 산천, 잠시 들른 사진의 도시, 지중해로 인한 타고난 온화한 기후, 외부인에게는 아직 과묵하지만 따스하게 웃을줄 아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알바니아에 푸욱 빠지게 하였다.


위의 소도시 사진을 찍은 곳에서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정상에 위치한 자그마한 성을 만나게 된다. 2차대전말기 알바니아 공산주의자들은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해 빨치산을 조직하여 무수히 많은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성안에는 그 당시 썼던 빨치산 무기 및 노획한 독일군 개인용 화기가 전시되어 있는 자그마한 전시관이 있다. 또한 그 성안에는 무수히 많은 탱크와 대포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비축하였다가 퇴각하면서 그대로 남겨진 것이라 한다. 그 무기들이 왜 그대로 지금까지 보관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 대포중 하나의 포신...


같은 성 맨 위에 올라가니 뜻밖에도 비행기 한 대가 놓여있다. 그것도 녹슨 미군 비행기. 미군용기에 쓰이던 별 표시가 선명하다. 그 비행기가 어떤 연유로 이 성에 남겨진 것인지, 불시착한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알바니아 전통 음악을 할아버지 악단이 연주하고, 10대 소녀들이 전통 춤을 선보이던 저녁 만찬. 수도 티라나에서 1시간여 버스를 타고 간 이 마을에서 가진 저녁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지, 10대 소녀들이 관광객을 위해 춤을 선사하는 과정은 즐거움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주저하게 한다. 연주, 노래, 춤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참석자들마저 한데 어우러져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물론 나를 포함한 절반의 사람들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수도 티라나를 벗어나 두어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어느 작은 오래된 도시 (마을?). 이름은 잊었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니 정겨움이 느껴진다. 축구는 여기서도 인기 종목이다.


Conference가 끝난 후 알바니아 남부 해안도시로 1박 2일 관광을 하러 가던 도중 잠시 들른 정교회 (Orthodox Church) 사원... 재정이 부족하여 보수비가 없어 수리를 제때에 못해 날이 갈수록 황폐해진다는데... 사원 내부 예배당에서 사진을 찍으려 들이미는 사람들에게 엄청 화를 내던 사원지기 할아버지가 지금도 생각난다. 호사스런 관광객에 대해, 알바니아 근대사를 몸소 겪은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도착한 곳이 사진의 해양도시. 알바니아 사람들이 많이 찾고, 게다가 인접한 그리스 사람들도 간혹 찾는다는데...파격적인 1박2일 여행비 (약 8만원...)에 포함된 조건이 1박 2일 숙박 및 식사 비용, 교통편이었다. 숙박은 뜻밖에도 오성급 호텔... 그 날 밤은 해안이 훤히 보이는 발코니 딸린 침실에서 호사스런 밤이었다.


동구권으로 지칭되는 지역중에서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은 알바니아. 유럽에서 최빈국이면서 이제 개방의 길로 들어서는 이 나라. 문제 많고 말 많은 곳이지만, 사람들에게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아직 산천이 아름답게 보호되어 있지만 언제 망가질지 아무도 모를 일...

Thursday, October 28, 2004

새 친구가 생겼습니다


5년 7개월만에 새 노트북을 장만했습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Fujitsu S-Series S6210SF

Friday, October 22, 2004

Dead man's post

내가 속한 연구소는 STICERD라고 하는 상위 조직에 속해 있다. Suntory and Toyota International Centres for Economics and Related Disciplines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느끼듯이 일본 기업에서 연구기금을 받아 설립된 것이다. 기금 출연 받을 때 큰 힘을 끼친 사람이 Michio Morishima 라는 교수로서, 지난 7월달 오랜 병마 끝에 돌아가셨다.

이 분 앞으로 우편함이 아직 존재하는데, 오늘 그 분 앞으로 소포 하나 배달되어 있다. 죽은 사람 앞으로 계속 배달되는 정기 간행물. 그 한 분의 세계, 우주는 멈추어섰지만 다른 세계, 우주는 계속 이어진다. 물적 시스템이 갖추어 지고 인간 사이의 관계가 그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하고 나니, '생명'이라는 단어가 제공하는 신비로움이 사라진다.

Thursday, October 21, 2004

기종 불문 만능 리모컨

경향신문 기사를 보니 기종을 불문한 모든 TV를 끌 수 있는 리모콘이 개발되어 팔린다고 한다. 자기 집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설치된 시청용 TV 모두를 1분 이내에 끌 수 있다고 하는데... 기사를 읽다가 문득, 시끄럽게 핸드폰 통화하는 사람 핸드폰 끄는 리모콘, 큰 소리로 얘기하는 사람 잠시 말 못하게 하는 리모콘, 횡단보도 파란불 빨리 켜지는 리모콘 등은 없을까 상상해 본다...

판매자 웹사이트에 가보니 개발 이유로 TV는 간접흡연과도 같기 때문이라나... 원하지 않은 시청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데... 재밌는 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순간 뜨끔해졌다... 점점 담배 끊어야 될 날이 가까워져 온다.

Tuesday, October 19, 2004

말, 긴장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 사람있고, 만연체로 길게 늘어져 말 많은 사람이 있다 하는데, 난 둘 다에 해당되는 것이 확실하다. '엄...', '아...' 등등 문장 사이, 단어 사이에 끼어 드는 잡음 역시 많아 지고.

예전에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무수한 잡음과 단절의 말잔치를 들은 뒤의 실망감...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를 씹어 보는 연습을 해야 겠다.

Saturday, October 16, 2004

지도교수

지난 여름 7월에는 북경에 있으면서 지도교수, 친구와 함께 워크숍을 열었었다. 사진 오른편에서 서서 얘기하고 있는 분이 지도교수 Anne Power. 영국의 박사과정은 지도교수-학생의 일대일 관계가 핵심이기에 지도교수와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이 지도교수는 나를 내치지 않는다. 항상 느끼지만 잘 해줄 때 잘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처음 만난 것이 1999년이었으니, 이 분을 알고 지낸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일년에 한번씩 본인과 남편이 지도하는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서 저녁을 먹이는데, 존경하는 점은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리를 손수한다는 점이다. 지난 번에는 수정이도 함께 갔었는데, 자기 집 정원에서 키운 채소를 따다가 요리에 곁들여서 수정이마저 감동했다.

Tuesday, October 12, 2004

우린 여기서 버스를 탄다

9월말 이사를 한 이후로 통학수단이 '도보'에서 버스로 바뀌다. 학교를 가려면 집에서 사진의 버스정거장까지 10분 정도 걷고, 여기서 172번을 탄다. 버스 타는 시간은 약 35분.

걸어다닐 때와 다른 점은 하루 1시간여를 소설책 보는데 소비한다는 점 - 그래서 즐겁다. 처음으로 하루끼 (Murakami Haruki) 소설 "The Wind-up Bird Chronicle"을 읽고 있다. 한국에서는 "태엽감는 새"로 번역되어 나온 것 같은데...태엽감는 새가 무엇을 뜻하는지 좀 더 생각해봐야 겠다...

사진 촬영: 2004년 10월 7일

주말이면 우리는 여기를 간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온 것은 9월말이었지만, 사실 이 동네는 영국에 와서 처음 2년반을 생활한 공간이다. 근방에 수정이가 다니던 학교가 있기도 하고. 이전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들러 차 한잔 또는 맥주 한잔 하던 곳이 사진의 펍(pub) 이다. 시내에 있는 곳과는 달리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가 손님을 맞이하는, 포근한 인상으로 편안함을 전달하는 곳이라, 큰 특징이 없어도 나의 발길을 붙드는 곳.

이사온 이후로 주말마다 한번씩은 여기를 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1년 동안 그러고자 한다. 매주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Wednesday, October 06, 2004

'꼬마'


난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는 게으르다. 그녀도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나보다는 부지런하다. 그렇지만 동물털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한 때가 1992년 8월. 그리고 2년뒤 나는 감포 앞바다에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느라 서울은 2주에 한번이나 왔다 가곤 했다. 나 없는 빈자리가 허전해 보여 94년인가 95년 여름 종로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강아지 인형이 '꼬마'다. 그 이후 '꼬마'는 줄곧 그녀 곁을 지키고 있다. '꼬마'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과 사랑의 흔적이 선명하다.

가끔 나보다 더 사랑받는 '꼬마'에게 때론 질투를 느낀다면 이해가 될까?

추신: 옆의 곰돌이는 '꼬마'의 단짝. 조카 태어날 때 같은 인형을 사준 후 이쁘다고 하나 더 샀었다.

Tuesday, September 28, 2004

이사2

지난 주 이사를 했다. 앞선 글을 읽은 분은 무슨 반복이냐 하겠지만, 또 이사를 했다. 먼저 한 이사는 일요일 이사였고, 지금 말하는 이사는 목요일 한 이사다. 일요일 이사를 하면서 어처구니가 없던 것이, 방은 수정이가 처음 봤던 방보다 배치구조도 안좋을뿐더러 규모도 무지 작았던 점이다. 방안을 들어서면 숨이 막힐 듯한, 1년을 살면 10년을 늙을 것 같은 탁한 느낌. 80년대초에 문열었다고 하는데, 그 때 설치해서 한번도 바꾸지 않은 듯한 pull-down 형식의 침대가 좁은 방 한 가운데를 차지하며 방문 조차 활짝 열리지 않았다 (소파형 침대는 많이 봤어도 이런 침대는 처음 봤다. 침대를 쓰지 않을 때에는 침대 매트리스와 받침을 들어 올려 벽에 기대 놓았다가 잘 때 내리는 방식인데 사진을 찍어야 설명이 될 듯 하다...).

워낙 어처구니없어 이사 다음날 바로 항의 이메일을 보내놓았더니 하루 더 지나 연락이 왔다. 옆집 빈집이 있는데 그 집 보고 마음에 들면 거기로 이사하겠냐고...

장판(?)을 새로 깔아야겠다는둥, 벽 페인트를 새로 깔끔하게 칠해야 겠다는둥 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시켜 보려 논의도 하며 마음을 다스리다가 그 제안을 받고, '혹시나' 해서 가 보았더니 훨씬 상태가 양호하여 이사하기로 결심하고 그 날 저녁 바로 당장 쓸 짐부터 옮겨 놓았다. 나머지 짐은 토요일 마저 옮기고.

이번 이사의 결론 - 최소한의 DIGNITY가 유지될 수 있는 주거 환경이어야 정신건강이 유지된다...

Wednesday, September 22, 2004

이사

한창 쏘다니며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질 않던 20대 때에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 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쉴 수 있는 공간, 잠시 기거하는 곳이라 생각될 뿐,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은 '정지'라고 느껴졌고, '집'이라는 물체에 대한 집착은 그 만큼 소유욕의 팽창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하나를 더 소유한만큼 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였고.

30대 중반이 되는 지금, 나이가 들었나 보다. '집'이라는 것이 이제는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동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돌아올 나만의 공간, 한결같은 나만의 공간이 점점 더 아쉬워진다. '집으로'라는 표현이 이젠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엊그제 이사를 했다. 북경에서의 생활 1년을 제외하면 런던에서 생활한지 4년, 그 동안 6번을 이사했더니 한 곳에서의 평균 거주기간이 8개월 뿐이 안된다. 잦은 이사는 정신건강에도 안좋다.

Saturday, September 11, 2004

맥주 한잔의 여유

여행을 가면 그 지방의 유명 음식 먹기... 나는 의식을 못했지만 수정이에 따르면 내가 이랬었단다. 어딜 가면 막국수를 꼭 먹어야 하고, 묵밥을 먹어야 하고, 뭘 먹어야 하고, 뭘 먹어야 하고 등등...

그런 취향이 이젠 좀 바뀌었나...요즘엔 음식 대신 그 지방의 맥주를 꼭 먹어야 여행을 간 느낌이 난다. 유럽의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그 지방산 맥주와 와인이 존재한다. 담배와 자극적인 음식으로 이미 굳어진 내 미각으로는 와인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풍부히 못느끼니, 그 보다 자극적인 맥주를 선호한다. 북경에는 '연경' 맥주가 맛있다. 그리고 싸다...

그리고 북경에서 맥주를 마시기 가장 좋은 곳이라 결론 지은 곳은 사진을 찍은 바로 여기...

사진: 2004년 7월 22일 북경

Thursday, September 09, 2004

화성으로부터의 초대장

은하수라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아주 어릴적, 할머니댁에서 였다. 아버지와 함께 마당에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 보다 처음 보았던 은하수. 그 많은 별들 사이로 '움직이는 별'을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그것이 인공위성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난 언젠가 별에 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밤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가끔 상상해본다. 한번쯤은 '화성'에서 초대장을 보내보기를...


사진설명: 화성탐사선 Spirit 촬영, 2004년 1월 6일 공개된 화성 지평선
출처: http://marsrovers.jpl.nasa.gov/gallery/press/spirit/20040106c.html

Monday, September 06, 2004

Sunset by Olafur Eliasson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좋아하는 사진이라 올려본다. '해질녘' (Sunset)이라는 Olafur Eliasson의 작품. 런던의 Tate Modern이라는 갤러리에 설치된 작품이다. 작년에 찍은 사진. 자동카메라인데도 의외로 좋은 사진이 되었다. 작년 연하장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몇 년 뒤에 다시 재활용 할까나...

...그러고보니 난 '과거회상'형인가 보다. 지는 해를 연하장으로 사용했으니...

Sunday, August 29, 2004

How to park a Fiat 500...

지금 사는 집에서 학교를 갈려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강변쪽으로 북진하다 다리 건너 강변을 따라 겉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Waterloo 기차역을 향해 걷다 Waterloo 다리를 건너는 방법이 있다. Waterloo 역으로 가는 길을 걷다 보면 항상 보는 차가 사진의 Fiat 500. 처음 이 차를 봤을 때 두 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간신히 탈 정도로 작으면서도 귀여워 한번 웃고, 개줄처럼 줄에 묶어 세워둔 것에 한번 더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들 한번씩은 미소 지으며 쳐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