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0, 2005

(박사)논문쓰기

시간은 자꾸 가는데 논문은 굼벵이 산책 나가듯이 한다. 지도교수 만날 때마다 지난 계획표를 끄집어 내어 수정하면서, 이번에는 지켜야지 하면서도 결국 또 고치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니 아무래도 계획을 제대로 지키지를 못한 내게 게으름이 있던지, 계획표 자체를 욕심만 내어 잘못 짰던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 글쓰기 방식에 문제가 있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나 가면서 처음 가졌던 포부는 점점 사라지고 어느덧 '기계적인 정리'가 되어 가는 느낌.

남은 시간 잘 쓰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결론 몇 가지 간추리며 스스로를 추스려 본다.

1. 박사논문은 많아야 다섯명이 본다는 것을 잊지 말 것 (나, 지도교수, 심사위원 두 사람, 그리고 교정 보는 사람).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야 더 할 나위 없지만, 사실 도서관 서고에 쌓여 있는 논문들의 90%는 두 번 다시 들춰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결론은 욕심내지 말 것.

2. 처음 가졌던 계획대로 계속, 꾸준히 써 나갈 것. 일단 처음 생각대로 쓴 이후 수정을 볼 것.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 이 점인데, 쓰다보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수정하고, 새로운 자료 보면 도로 앞에 가서 추가하고, 그러다 보면 끝을 쉽게 보지 못한다.

3. 한 문장이 세 줄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간결하게 쓸 것. 영어를 아무리 신경쓰며 잘 해 볼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닌 이상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쓰다보면 주저리 주저리 이말 저말 더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꼭 문장 하나에 온갖 접속사 다 들어가면서 만연체로 늘어진다. 그러다 꼭 지도교수에게 핀잔 아닌 핀잔 듣는다. 문법적으로 맞을지 모르지만 읽어도 뭔소린지 헷갈린다고... 자고로 국어나 외국어나 간결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4. 책상위에 많은 책이 쌓여 있지 않도록 할 것. 이것 역시 제대로 안되는 점이다. 항상 내게 도움말 주는 친구 왈, 박사과정 일찍 끝내는 사람들은 대게 책장 위에 책 몇 권 없다 한다. 쓸데 없는 자료들 뒤적이다 시간 소비하지 말자.

5. 논문을 준비하며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도움을 항상 잊지 말 것. 개별 면담하며 만난 분들을 생각하며, 초심을 잊지 않도록 항상 되새길 것.

6.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을 즐기기. 살면서 쓰고 싶은 말을 한 권의 책(논문) 속에 담아 낼 수 있을 때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고역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이어야 마땅하다. 항상 이 점을 잊지 말아야 겠다. 과정이 끝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매순간을 즐길 것.


추신: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에 계신 어느 선배께서 이 글 읽고 보내셨던 답글을 아래 덧붙입니다. 이해하시겠지요 ^^

이 글을 보니, 아직도 그 지옥같던 시간들이 생각이 납니다. 보다 못한 집사람이 어느날 이쁘게 생긴 종이박스 하나를 사왔습니다. 하는 말씀이, 드래프트를 쓰고는 집어놓고 절대로 꺼내지 말라는 군요. 다시는 손을 못대게 ^^. 딴에는 도와준다는 거였는데, 학생이 말을 안들어서 실효는 없었죠. 제 조언이요?

첫째, 쓰는것 보다, 고치는데 시간을 많이 할것. 장의 back bone을 거칠게 쓰고, 여러번 손질을 하라는 뜻입니다. 디테일이 너무 강하면 논리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둘째, 밤에는 고치지 말고, 주로 낮에 수정할것. 밤에는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저는 공원에 들고 나간적이 많은데, 벤치에서 읽고 고치고, 산책도 하고. 이럴때일수록, 규칙적으로 운동을.

셋째, 가중은 참 중요한 것 같더군요. 할말이 많아 서론이 길어지다 보면, 결론이 초라해서 황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꼭 강조하고 싶은 자신만의 발견과 의미에 가중을 잘 고려해서 하일라이트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넷째, "How to write a thesis"는 학위 다 받고 읽어보았습니다만 (왠지 처세술같아서). 역시 서양인이 쓴 내용답게. 정량적이 관리를 강조했던게 인상에 남습니다. 예를 들어, 이 장은 5000자가 될 지 3000자가 될지를 정해보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죠. 버젼닝관리까지 합해서요.

다섯째, 끝낼날을 꼭 정하십시요. 그래야, 끝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의 박사논문은 결국 자기만족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심사관들의 질문이 기대이하여서,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괜히 시간만 더 보낸것 같고. 요즘같은 시대에. 한데, 담금질이 잘 되어있는지는 박사후의 연구생활을 통해 알 수 있는것 같습니다. 좀 더 날카롭게 좁은 구멍을 깊이 깊이 팔 수 있도록 조련하는 기간이니, 너무 조바심은 내지말고, 충분히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인제 다 끝난것 같습니다. 너무 잘 한 모습만 지도교수한테 보일생각말고, 초본이 섞인 장이 있더라도, 전부 출력해서 제본을 해 보십시요. 손에 잡히는 순간 끝이 보입니다 ^^.

열심히 응원할테니, 봄에는 땀 좀 흘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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