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15, 2006

황당한 MBC 여가 물가 비교

간만에 텔레비젼 틀어 놓았다 우연히 보게된 MBC 뉴스데스크의 각국 물가 비교 뉴스, 서울의 물가가 다른 나라 대도시와 비교해서 얼마나 비싼지를 알아본다는 것인데...

1) 해리 포터 시리즈중 불의 잔 단행본
도쿄 1만 2천 8백원 (단행본 1권으로 출판)
서울 단행본 1권을 4권으로 나눠 출판, 총 3만원

2) 에릭 클랩튼 공연 좌석료
도쿄 S석 7만 6천원/인; 서울 S석 18만원/인

3) 샤넬 스킨 로션
도쿄 5만 2천원; 서울 6만 5천원

4) 양주 조니 워커 블랙 750ml
도쿄 1만 6천원; 서울 3만 3천원

5) 골프채 - 캘러웨이 최신 드라이버
뉴욕 28만원; 도쿄 27만원; 서울 60만원

6) 골프장 이용료
한국은 미국의 5배, 일본의 2배.

미국 현지인과의 인터뷰: "한국에서 골프를 치려면 250달러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게임에?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비교를 했던 것일까? 뉴스 듣자 마자 열받아 생각난 것 그냥 주욱 적으면:

  • 한국에서의 왜곡된(?) 문화상품 및 사치품 유통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없이 그냥 직접 비교하는 저 단순함;
  • 더 비싸야 좋은 줄 알고 사는 일부 사치품 소비층에 대한 비판 없는 물가 비교;
  • 골프가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인 미국에서의 골프장 이용 가격을 그대로 한국과 비교하는 몰지각;

서울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집값을 제외한다면 일반 시민들이 생활하면서 소비하게 되는 소비재, 대중교통 수단 등은 외국 대도시에 비해서 많이 저렴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서울 종로 피맛골에서 친구 만나 둘이 2만~3만원이면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병 곁들일 수 있지만 런던의 도시에서 그런 음식을 그 가격에 먹기엔 불가능하다는 것은 왜 빼먹었나? 한국의 담배값은 2500원이지만 유럽에서는 5천원, 영국에서는 만원이라는 것은 왜 언급안하나?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가 여가 물가가 지나치게 비싸 서민들이 향유하기에 힘들다라는 것을 보도하려는 의도였다면 단순한 직접 비교 대신에 왜 이렇게 비싼지 그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짚어주고 개선책을 찾아봤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보도의 결론은 외국 여행할 여력이 있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즐기지 말고 외국가서 즐깁시다" 라는 메시지만 전달할 뿐이다. 도대체 60만원 주고 골프채 드라이버를 살 사람들, 18만원 주고 (혼자 가는 사람은 없을테니 최소 2인이라면 36만원) 에릭 클랩튼 가는 사람들이 한국 인구의 몇 %나 될 것이라는 말인가? 서민의 삶이 힘들다고 툭하면 내뱉는 뉴스는 실제로는 중상류층 이상의 사람들을 위한 뉴스 뿐이다.

Wednesday, December 13, 2006

새벽 공기

6.50 AM
계동 현대 사옥

인적 뜸한 거리
속속 도착하는 세단
총무과 직원들이 고개 숙이며 문을 연다

한가한 엘리베이터
조용한 사무실
고개 숙인 부장
신문 든 중역
주인 기다리는 텅빈 책상들

커피 한잔 들고 옥상에 올라
담배 한개피

이렇게 또 하루 시작한다.

Tuesday, December 12, 2006

창덕궁길

계동 옆으로는 창덕궁
그 옆으로는 창덕궁길, 가회동 한옥마을
제 각기 다른 얼굴, 다른 연령을 가진 나즈막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몇년간 이 근처에서 매일 점심먹고 저녁먹고 하였지만 둘러보지 못했던 그 곳에
빌딩 숲으로 뒤덮이는 종로, 광화문, 안국동 곁 그 곳에
이제껏 미처 몰랐던 고즈넉함

창덕궁 그늘아래
도시의 쉼터가 놓여있다.

해후

몇 년 만의 해후
낯설음, 익숙함 그리고 또 다시 낯설음
다시 또 익숙함 그리곤 애틋함

물리적 시간 그 이상으로 벌어진 간격
저마다의 자리에서 쌓여진 시간, 쌓여진 관계
그 자리를 메꿔보려 하지만 남는 것은
아쉬움, 낯설음, 애틋함

어찌 보면 그 간격을 메꾸려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천천히 살아가려는 이에겐 빠른 걸음이 숨차게 느껴진다

'내 얘기 좀 들어봐'
'내게 물어봐줘'
소리없는 아우성

그래, 들을께
마음 가벼워질 때 까지 들어줄께
아마도 난 듣고 싶었던 걸거야
들려주고 싶은 것보다 듣고 싶은 것이 더 많은데
그걸 이제서야 알은게지

Monday, May 15, 2006

런던에서 살아가기 - 존재의 이유(?)

런던에서 산지도 벌써 만 7년이 되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흠칫 한번 놀래주었다. 어느덧 서울 다음으로 가장 오래 산 곳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하고...

처음 런던에 와서 지낼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외국 사람들 많이 모인 파티에 갔을 때였다. 피부색 비슷한 동양애들이 제법 있으면야 부담도 덜 되곤 하였지만, 어쩌다 백인애들 우르르 있는 자리에 가거나 영국애들만 있는 곳에 가면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쭈뼛거리며 시간때우는데 애먹곤 하였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지내고 이젠 어느 정도 '현지화'가 되었다는 느낌이 가끔 들 때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역시 앞서 얘기한 파티나 모임에 갈 때이다. 생각이 바뀌면 자세도 바뀐다고 하던가, 예전의 부담감이 '나 혼자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내가 참여함으로써 그 모임에 문화적 다양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백인애들 모인 곳에서는 동양인으로서 그 들에게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그들이 겪을 기회가 없었던 다른 문화에 대해 한번이라도 접하게 해주는...뭐, 이런 식의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그들에게 배우고 새로 알게되는 것이 매번 있지만, 그래서 어색할 경우도 자주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벽이 아닌, 소통의 기회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Sunday, May 07, 2006

프로야구, 박찬호에 대한 추억

국민학교 6학년인가 프로야구 출범을 하면서 각 구단에서는 흥행을 위해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각종 경품을 얹어 주곤 하였다. 나 역시 무슨 마음인지 당시 MBC 청룡에 가입해 경품을 받아 한참 신나했었던 것 같다. 텔레비젼 중계가 잦지 않았던지라 숙제를 하면서도 라디오 옆에 갖다 놓고 경기 중계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곤 하였던 것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다지 프로야구에 몰입하진 않았으나 회사에 취직한 후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가 열리면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 프로야구에 빠져들곤 하였다. 단지 이유는 내기 베팅을 하기 위해서... 결승전이 벌어질 때면 어느 누가 경기 전날부터 가로 세로 줄 그어 칸을 만든 소위 '빙고판'이 돌았다. 각 칸은 두 팀간 점수를 의미하는데, 이를 우린 '구좌'라 불렀다. 보통 한 구좌당 오천원씩 했으니, 당첨된 사람은 10만원 전후로 배당금을 받고, 아깝게 탈락한 사람도 얼마씩 위로금을 배당해주는 식이었다. 이런 날은 소주에 삼겹살해서 파티가 벌어지곤 하였다. 물론 보통 당첨된 사람이 쏘는 것이었지만... (자세한 빙고 방식은 개별 질문하시길...)

그러다 다시 몰입하여 일일히 챙겨 보게 된 것이 박찬호의 경기였다. 그 당시 직장다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 같은데, 박찬호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들 매이닝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었다.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그 당시, 박찬호 경기는 보통 한국시간으로 점심 무렵에 열리었기에, 휴게실과 은행내에 설치된 텔레비젼 앞에는 점심 일찍 먹고 모인 직원들로 붐비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아예 점심을 텔레비젼이 설치된 식당 찾아 점심 시간 내내 밥먹으며 경기를 보곤 하였다. IMF로 인해 분위기 살벌하던 그 당시, 박찬호의 경기와 그의 호투는 일종의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텍사스로 이적한 박찬호가 4년 넘게 부진하여 청량제로서의 수명이 다했나 싶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 다시 살아나지 않나 싶다. 어제도 9이닝 무실점 투구한 것이 반갑게만 들린다. 낯설은 땅에서 힘들게 일어선 과정, 재기에 성공하는 인간 승리, 이런 것이 메이저리그와 프로야구의 상업성을 뒤로 하고 박찬호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덧붙여 그가 제대로 날기 시작한 97년, 98년, 그의 투구 하나 하나에 우울한 기분도 실어 보내던 당시의 추억이 그를 못잊게 만든다.

후기: 프로야구 출범 직후 원래는 가장 약한 팀이라고 했던 삼미를 응원했었다. 수정이도 같은 이유로 그랬었다 하고... 한참을 지나도 워낙 지기를 되풀이하던지라 어린 마음에 그냥 응원팀을 확 바꿔버렸었다 ^^;

Saturday, May 06, 2006

통증

엉치가 멍든 것 처럼 아프다. 몸의 균형을 잃어 어느 한쪽으로 하반신 힘이 쏠리면 찌릿하고 통증이 엄습한다. 어제 낮부터 이러더니 오늘까지 이어진다. 조심조심 움직이고 의자에 앉더라도 자세 곧추 세우게 된다. 아무래도 앉는 자세에 문제가 있어 디스크 비슷한 증상이 생긴 것 아닌가 한다.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없고 신경이 예민해져서인지 오늘 오후내내 은근 짜증 모드이다.

추신: 5월 8일, 아픈 것 다 나았다. 엉치 한 군데 아파도 몸을 꿈쩍하기가 힘들었는데... 건강히 낳아주셔서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된다.

Thursday, May 04, 2006

PhD Exam Entry

2월초부터 질질 끌던 PhD Exam Entry Form을 드뎌 제출. 미적지근거리며 유달리 엄격히 굴던 지도교수와 3달여 줄다리기 하다 이제서야 마무리지었다. 아무래도 이전 학생들이 entry form 제출하고도 한참 지나 논문을 제출해서 난처했었는지, 내게는 아예 논문 초고를 완성하면 양식 제출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그 조건 충족시키느라 애먹었다. 어쨌든 논문 제출을 위한 서류 작업은 끝이다.

지도교수의 강력한 ego를 보여주는 문장 하나. 원래는 외부 논문 심사위원 한명, 내부 심사위원 한명 선정하게 되어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 외부 심사위원 두명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적게 되어 있는 란에 마지막으로 마무리한 말:

"We tried very hard."

할만큼 했으니 문제제기 하지 말라는 강력한 포스가 느껴진다...

Friday, April 28, 2006

반가운 노래들

지금은 늘어진 테이프로나 들을 수 있는,
그 마저도 없으면 기억더듬어 조용히 불러보던 노래들을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듣고 싶은 분들은 이 곳을 가시길... 80,90년대 주옥같던 노래들이 다 있답니다~

http://bob.jinbo.net/main/index.php

Saturday, April 22, 2006

The Internationale

오래전 서로를 북돋아주던 노래.
합창으로 불러야 제맛이 나는 노래.
아지 잘 뜨던 녀석이 있으면 더 감칠맛 나던 노래.
어쩌다 가끔 들어보고 싶곤 하던 노래.
우연히 접한 링크.
듣고 싶은 분들 있을까 해서 함 걸어본다.

The Internationale (Russian Chorus)

Sunday, April 16, 2006

Ice Age 2

새로 상영되기 시작한 Ice Age 2를 보았다. 오래전 전편을 재밌게 봤었기에 그 기대를 가지고 2편을 보았으나 대략 큰 실망. 얄팍한 스토리 전개와, 뜬금없는 70,80년대식의 뮤지컬 포맷, 헐리우드에 만연한 남녀연애공식 등등 뭐 하나 뚜렷하게 좋게 봐줄만한 것이 없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전편 영화 도입부와 마무리에 반짝 출연하면서 만화적 재미를 선사해준 다람쥐는 2편에서는 줄기장창 등장하면서 오히려 그 신선함을 반감시켰으며, 노아의 방주를 패러디한 동물들의 대탈출 장면은 그냥 쓴웃음만 제공하였다. 상상력의 빈곤, 전편의 성공에 기대어 쉽게 돈벌려는 얄팍한 상술로 졸작이 되어버린 만화 한편이었다. 보는 내내 하품이 나오던 만화.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속설이 들어맞는 또 하나의 예.

Friday, April 07, 2006

BT Broadband

오늘 드디어 wireless broadband로 전환하였음. 어제 주문한 것 오늘 도착. BT가 점점 달라진 모습으로 사람을 놀래킨다.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나온 BT Fusion을 통해 wireless hub 기기 무료 제공받고, 휴대폰도 새거 하나 장만하였다. 이제 수정 컴퓨터용 wireless dongle 하나 구하면 완벽히 케이블을 없앨 수 있다... 1년 동안 기다린 보람 있었음.

Tuesday, February 07, 2006

HDD 교체

생일 감회를 쓸까 하다 그걸 느낄 겨를도 없이 랩탑 하드와 하루 종일 씨름을 했다. 조금씩 맛이 가는 것을 느끼던 하드가 지난 주 내내 시동시에 끄르륵 하는 신음소리를 토해냈었다. 불안하여 새 하드를 장만, 종일 백업/소프트웨어 설치 등등으로 하루가 다 갔다. 기존 하드를 외장형으로 바꾸려던 계획은 백업 마지막 단계에서 완전히 맛이 가며 아예 움직이려 하질 않는다. 거의 비명과도 같은 깊은 신음소리, 간혹 섬뜩하게 뒤틀리는 몸부림, 그리고 침묵. 이것이 반복되면서 아주 완전히 맛이 가는 느낌을 준다. 다행이 웬만한 데이터, 자료는 백업받고, 신규 하드로 다 옮겼다. 1년 4개월뿐이 안된 하드가 이리 맛이 가다니... 기존/신규 하드 사양을 적어본다.

기존: Toshiba 4200 RPM, 2M Buffer, 60GB
신규: Fujitsu 5400 RPM, 8M Buffer, 80GB

새로 산 하드를 설치하니 하드 돌아가는 소리가 확 줄고, 부팅이 많이 빨라졌다. 일단 대만족.

하드 바꾸는 것을 더 미루었다간 대략 낭패 볼 상황이었는데 모면해서 다행이다.

Wednesday, February 01, 2006

지도교수 면담

목요일 있을 지도교수 면담을 위해 오늘 두 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써서 이멜 보냈다. 면담때 논의하고픈 중요 내용을 몇 가지 추려 담아보냈다. 마지막 면담이 12월 중순에 있었으니, 그간 시간도 많이 지났고, 게다가 지도교수가 항상 자기 일 때문에 마음이 바쁜지라 과거 면담시 무슨 논의를 차분히 하기가 힘들었기에, 이렇게라도 하면 한번이라도 더 생각을 해보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마음에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편지에 첨부해 보낼 자료 준비하느라 신경을 썼더니 이멜 보낸 이후엔 대략 녹초. 이번에 피드백 받을 논문 찹터는 지난 주 보냈으나 지도교수가 이미 읽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이번 달에 해야 될 일이 좀 많다. 논문외에도 대략,
(1) exam entry form 작성하기;
(2) examiner 선정 의논하기;
(3) publication 준비하기;
(4) job apply 하기;
(5) 생일 챙기기...

가장 중요해야할 일이 가장 나중에 생각나니 대략 마음에 여유가 더 필요하다는... 오른쪽 어깨가 계속 욱신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