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15, 2006

런던에서 살아가기 - 존재의 이유(?)

런던에서 산지도 벌써 만 7년이 되어간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흠칫 한번 놀래주었다. 어느덧 서울 다음으로 가장 오래 산 곳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하고...

처음 런던에 와서 지낼 때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외국 사람들 많이 모인 파티에 갔을 때였다. 피부색 비슷한 동양애들이 제법 있으면야 부담도 덜 되곤 하였지만, 어쩌다 백인애들 우르르 있는 자리에 가거나 영국애들만 있는 곳에 가면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쭈뼛거리며 시간때우는데 애먹곤 하였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지내고 이젠 어느 정도 '현지화'가 되었다는 느낌이 가끔 들 때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역시 앞서 얘기한 파티나 모임에 갈 때이다. 생각이 바뀌면 자세도 바뀐다고 하던가, 예전의 부담감이 '나 혼자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내가 참여함으로써 그 모임에 문화적 다양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백인애들 모인 곳에서는 동양인으로서 그 들에게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그들이 겪을 기회가 없었던 다른 문화에 대해 한번이라도 접하게 해주는...뭐, 이런 식의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그들에게 배우고 새로 알게되는 것이 매번 있지만, 그래서 어색할 경우도 자주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벽이 아닌, 소통의 기회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Sunday, May 07, 2006

프로야구, 박찬호에 대한 추억

국민학교 6학년인가 프로야구 출범을 하면서 각 구단에서는 흥행을 위해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각종 경품을 얹어 주곤 하였다. 나 역시 무슨 마음인지 당시 MBC 청룡에 가입해 경품을 받아 한참 신나했었던 것 같다. 텔레비젼 중계가 잦지 않았던지라 숙제를 하면서도 라디오 옆에 갖다 놓고 경기 중계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곤 하였던 것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다지 프로야구에 몰입하진 않았으나 회사에 취직한 후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가 열리면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 프로야구에 빠져들곤 하였다. 단지 이유는 내기 베팅을 하기 위해서... 결승전이 벌어질 때면 어느 누가 경기 전날부터 가로 세로 줄 그어 칸을 만든 소위 '빙고판'이 돌았다. 각 칸은 두 팀간 점수를 의미하는데, 이를 우린 '구좌'라 불렀다. 보통 한 구좌당 오천원씩 했으니, 당첨된 사람은 10만원 전후로 배당금을 받고, 아깝게 탈락한 사람도 얼마씩 위로금을 배당해주는 식이었다. 이런 날은 소주에 삼겹살해서 파티가 벌어지곤 하였다. 물론 보통 당첨된 사람이 쏘는 것이었지만... (자세한 빙고 방식은 개별 질문하시길...)

그러다 다시 몰입하여 일일히 챙겨 보게 된 것이 박찬호의 경기였다. 그 당시 직장다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 같은데, 박찬호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들 매이닝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었다.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그 당시, 박찬호 경기는 보통 한국시간으로 점심 무렵에 열리었기에, 휴게실과 은행내에 설치된 텔레비젼 앞에는 점심 일찍 먹고 모인 직원들로 붐비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아예 점심을 텔레비젼이 설치된 식당 찾아 점심 시간 내내 밥먹으며 경기를 보곤 하였다. IMF로 인해 분위기 살벌하던 그 당시, 박찬호의 경기와 그의 호투는 일종의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텍사스로 이적한 박찬호가 4년 넘게 부진하여 청량제로서의 수명이 다했나 싶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 다시 살아나지 않나 싶다. 어제도 9이닝 무실점 투구한 것이 반갑게만 들린다. 낯설은 땅에서 힘들게 일어선 과정, 재기에 성공하는 인간 승리, 이런 것이 메이저리그와 프로야구의 상업성을 뒤로 하고 박찬호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덧붙여 그가 제대로 날기 시작한 97년, 98년, 그의 투구 하나 하나에 우울한 기분도 실어 보내던 당시의 추억이 그를 못잊게 만든다.

후기: 프로야구 출범 직후 원래는 가장 약한 팀이라고 했던 삼미를 응원했었다. 수정이도 같은 이유로 그랬었다 하고... 한참을 지나도 워낙 지기를 되풀이하던지라 어린 마음에 그냥 응원팀을 확 바꿔버렸었다 ^^;

Saturday, May 06, 2006

통증

엉치가 멍든 것 처럼 아프다. 몸의 균형을 잃어 어느 한쪽으로 하반신 힘이 쏠리면 찌릿하고 통증이 엄습한다. 어제 낮부터 이러더니 오늘까지 이어진다. 조심조심 움직이고 의자에 앉더라도 자세 곧추 세우게 된다. 아무래도 앉는 자세에 문제가 있어 디스크 비슷한 증상이 생긴 것 아닌가 한다.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없고 신경이 예민해져서인지 오늘 오후내내 은근 짜증 모드이다.

추신: 5월 8일, 아픈 것 다 나았다. 엉치 한 군데 아파도 몸을 꿈쩍하기가 힘들었는데... 건강히 낳아주셔서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된다.

Thursday, May 04, 2006

PhD Exam Entry

2월초부터 질질 끌던 PhD Exam Entry Form을 드뎌 제출. 미적지근거리며 유달리 엄격히 굴던 지도교수와 3달여 줄다리기 하다 이제서야 마무리지었다. 아무래도 이전 학생들이 entry form 제출하고도 한참 지나 논문을 제출해서 난처했었는지, 내게는 아예 논문 초고를 완성하면 양식 제출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그 조건 충족시키느라 애먹었다. 어쨌든 논문 제출을 위한 서류 작업은 끝이다.

지도교수의 강력한 ego를 보여주는 문장 하나. 원래는 외부 논문 심사위원 한명, 내부 심사위원 한명 선정하게 되어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 외부 심사위원 두명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적게 되어 있는 란에 마지막으로 마무리한 말:

"We tried very hard."

할만큼 했으니 문제제기 하지 말라는 강력한 포스가 느껴진다...